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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의 땅속을 달리는 부산 도시철도
  • 부산의 땅속을 달리는 부산 도시철도

    부산의 도시철도는 교통난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먼저 교통량이 가장 많은 남북축의 중앙 대로를 따라 도시철도 1호선이 건설되고, 동서 방향의 도시권 확장에 맞추어 동서축의 도시철도 2호선이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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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도시철도(都市鐵道) 서막은 당시 부산의 가장 큰 현안이었던 교통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출퇴근 시간만 되면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중앙로의 교통체중을 해결할 수 있는 도시철도 건설만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부산은 해방 이후 귀환동포와 6·25전쟁으로 피난민 유입과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와 도시화로 급속하게 인구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교통수단이 필요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도시철도 건설은 1974년 서울에 이어 1979년 부산에서도 도시철도 건설이 시작되었다.

 

부산의 도시철도는 교통난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먼저 교통량이 가장 많은 남북축의 중앙 대로를 따라 도시철도 1호선이 건설되고, 동서 방향의 도시권 확장에 맞추어 동서축의 도시철도 2호선이 건설되었다. 또한 도시철도 1·2호선의 개통 이후 주변과 기존 노선을 연결하는 도시철도 3·4호선이 개통되며 부산 전역으로 도시철도 노선이 연결되었다. 도시철도는 부산의 주 간선 도로와 함께 부산 교통의 대동맥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호선(32.5Km)은 1979년 10월 기본계획이 수립되었고, 1981년 5월 기본 및 실시설계가 완료되었다. 1단계 노포∼범내골 구간이 1981년 6월 23일 착공하여 1985년 7월 19일에 개통되면서 부산도시 철도의 역사를 시작되었다. 2단계 범내골∼중앙동 구간이 1983년 7월 28일 착공하여 1987년 5월 15일에 개통되었다. 3단계 중앙동∼서대신동 구간이 1984년 8월 14일 착공하여 1구간인 중앙동∼토성동 구간이 1988년 5월 19일 개통되고, 2구간인 토성동∼서대신동 구간이 1990년 2월 28일 개통되었다. 4단계 서대신동∼신평동 구간이 1990년 7월 24일 착공하여 1994년 6월 23일 개통으로 전 구간이 완전 개통되었다. 1호선 다대선 연장공사가 2009년 11월 20일 착공하여 2017년 개통을 앞두고 있다.

 

2호선(46Km)은 1991년 5월에 기본계획을 확정하였다. 1단계 서면~호포 구간이 1991년 11월 28일 착공하여 1999년 6월 30일 개통되었다. 2단계 서면∼장산 구간이 1994년 10월 27일 착공하여 1구간인 서면∼광안동 구간은 2001년 8월 8일, 금련산∼광안동 구간은 2002년 1월 16일 개통되었고, 2구간인 광안동∼장산 구간은 2002년 8월 29일 개통되었다. 3단계 호포∼양산(중부) 구간은 2001년 11월 21일 착공하여 2008년 1월 10일 개통으로 전 구간이 완전 개통되었다.

 

3호선(18.3Km)인 수영∼대저 구간은 1996년 2월에 건설 기본계획이 확정되었고, 1997년 11월 사업계획이 승인되었다. 1997년 11월 25일 착공하여 2005년 11월 28일 개통되었다. 도시철도 4호선(11.2Km)인 미남∼안평 구간은 1996년 2월 건설 기본계획이 승인되었고, 1999년 4월 기본설계 용역이 완료되었다. 2001년 10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토목분야 및 설비분야 실시설계가 완료되었고, 2003년 12월 3일 착공하여 2011년 3월 30일 개통되었다.

 

부산∼김해간 경전철은 1992년 8월 12일 경전철사업 정부시범사업으로 선정(민자유치대상사업) 되었고, 2000년 1월 7일 민간투자시설사업 기본계획이 확정되었다. 2002년 12월 3일 실시협약체결 및 사업시행자를 선정되었고, 2006년 1월 19일 실시설계 계획이 승인되었다. 2006년 4월 1일 착공하여 2011년 9월 17일 개통되었다.

 

사상∼하단선(6.9㎞)은 2013년 1월 기본계획을 확정하였고, 6월에는 1·3·5공구를 설계·시공 일괄 입찰 방식(턴키·Turn Key)으로, 2·4공구를 기타 방식으로 건설하기로 결정되었다. 2016년 6월 15일 착공하여 2021년 준공을 목포로 공사 중에 있다. 양산선(12.5㎞)인 노포동∼양산 북정 구간이 2015년 3월 기본계획이 확정되었고, 2016년 12월 현재 기본 및 실시설계가 진행 중에 있다. 도시철도 건설은 부산 전역과 김해, 양산 등으로 연결되는 광역교통망 체계를 구축하는데 있다.

 

부산 도시철도 환승역은 8군데로, 서면역(1호선, 2호선), 덕천역(2호선, 3호선), 연산역(1호선, 3호선), 수영역(2호선, 3호선), 동래역(1호선, 4호선), 미남역(3호선, 4호선), 사상역(2호선, 경전철), 대저역(3호선, 경전철)이 환승 가능하다. 특히 부산의 도시철도는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인하여 지하철 역사가 일반적인 역보다 깊은 곳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부산 도시철도 3호선 만덕역(萬德驛)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 기네스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철도 역이다. 만덕역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202-5번지 만덕대로에 있다. 만덕역의 승강장은 지표면에서 68.41m인 지하 9층에 위치해 있는 도시철도역으로 부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도시철도역 중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지하철역이다.

 

만덕역은 모두 4개의 출구를 가지고 있다. 역사는 지하에 9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하 1층은 대합실이고, 지하 9층이 승강장이 있다. 지하 1층과 지하 9층의 승강장 사이에는 4단계의 에스컬레이터로 이어져 16대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지하 1층에서 지하 9층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승강기가 총 5대가 있다. 승객들을 대합실까지 원활한 이동을 위해서는 최소한 5대 정도는 필요하다. 역내 시설은 역무실, 매표소, 만남의 장소, 고객 서비스 센터, 화장실, 승차권 발매기 등이 설치되어 있어 이용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만덕역이 있는 도시철도 3호선이 지나가는 만덕대로는 동래구에서 북구로 연결되었으며, 또한 남해고속도로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로 부산의 최대 상습 정체구간 중 하나인 만덕고개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의 상습 정체를 해소하고자 도시철도 3호선이 건설되었다. 만덕역을 만덕고개의 중턱에 고지대에 위치하다 보니 철도는 급경사를 따라가지 못하므로, 결국 깊은 곳에 역사가 설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만덕역은 대한민국 도시철도 역 중 가장 깊은 곳에 있으며, 다음역인 미남역과의 사이에 제2 만덕터널이 있어서 역간 거리 또한 3.3㎞나 된다.

 

도시철도는 지하에 있으므로 깊이에 대한 논란이 있기 마련이다. 해발고도 기준으로 한강물보다 아래에 있는 서울의 도시철도 5호선 여의나루역이 해발 22.55m에 위치하여 가장 깊다. 하지만 언덕 아래에 있는 역이라면 해발고도 기준으로 더 높더라도 지표면 기준으로는 더 깊은 역일 수 있다. 지표면에서 깊은 역으로 서울 도시철도 8호선 산성역도 55.4m로 유명하지만, 부산 도시철도 3호선이 건설되면서 만덕역에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이러한 역들은 역 위에 언덕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만덕역은 다른 역과 달리 승객이 에스컬레이터로 승강장까지 이동하지 않고 승강기를 이용한다. 왜냐하면 지하 9층에서 지하 1층까지 올라오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만덕역 대합실과 승강장 사이에는 승강기 5대와 에스컬레이터 총 16대가 설치되어 있다. 에스컬레이터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며, 총 4번에 걸쳐 지하 9층까지 이어져 있다. 승강기를 타고 내리면 바로 지하 1층 개찰구가 나온다. 승강기는 지하 1층에서 지하 9층까지 층마다 승강대가 존재하긴 하지만 보수공사 또는 대피용으로 건설되었지, 실제로 이용하지는 않아 승강기 내부의 스위치에는 지하 1층과 지하 9층 버턴만 존재한다.

 

만덕동(萬德洞)에는 만덕역의 유명세처럼 동명의 지명의 유래가 되었던, 고려시대의 대가람인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인 만덕사지(萬德寺址)가 제1 만덕터널 입구 좌측 산 쪽에 위치해 있다. 만덕사지는 고려 전기에 창건하여 고려 후기까지 있던 절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고려사(高麗史, 1449)』 권38 공민왕 즉위년 12월조에 따르면, “12월 신묘에 영릉의 서자 석기의 머리를 깎아 만덕사에 두었다”라는 기록이 있어 고려 말까지 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